올챙이 시절 기억하는 개구리 ‘에픽게임즈’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시간 탓이든 기억 탓이든 많은 사람은 어릴 적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아예 기억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기껏 남은 기억도 정확하기보다는 보정이 들어간 경우가 많습니다. 신기하게도 흔적도 없을 것처럼 느껴지던 당시 기억들은 모두 뇌에 남아 있다고 하네요. 

다만, ‘일화’보다는 ‘절차’를 잘 기억한다고 하네요.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친구와 자전거 탄 것’(일화)은 까먹어도 ‘자전거 타는 법’(절차)은 기억하는 거죠. 몸이 기억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이나 봅니다. 

자전거를 누구랑 탔는지는 잊어도, 자전거 타는 법은 기억하죠. / Wikimedia Commons

하지만 이렇게 떠올리기 힘든 옛 시절을 여전히 기억하고 소중히 여기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에픽게임즈’입니다.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 개발사이자, ‘에픽게임즈 스토어’의 운영사이기도 하며, 게임 엔진인 ‘언리얼 엔진’ 제공 업체입니다. 게임을 요리로 치면, 음식점 운영과 함께 조리 도구(게임 엔진)를 만들면서, 거대한 백화점(플랫폼)을 운영하는 셈입니다. 

혼자서 다 할 것처럼 보이는 이 에픽게임즈는 개발사를 위한 다양한 지원 정책으로도 유명합니다. 그 중심에는 에픽게임즈 CEO인 팀 스위니의 확고한 철학이 있습니다. 바로 ‘개발자 중심의 공정한 생태계’입니다. 게임을 개발한 사람에게 합당한 가치가 돌아가면,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도 더 큰 혜택이 간다는 것이죠. 

● 관련 기사: “개발해보니, 이게 필요해” 에픽게임즈, 이유 있는 親개발자 행보

개발자 출신인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CEO. 그는 개발자를 너무 아껴서 문제(?)다. / Epic Games

에픽게임즈 지원 정책은 게임 자체부터 게임 판매, 게임을 만드는 도구까지 전방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에픽 온라인 서비스’로 다양한 게임 에셋과 에픽게임즈의 소셜 자원까지 공유하고 있습니다.

물론 에픽게임즈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닙니다. 2000년대 초 난립하는 게임 엔진 중에서 언리얼 엔진 3은 압도적인 퀄리티를 앞세워 자신만의 자리를 꿰찼습니다. 하지만 인디 게임사에는 그림의 떡이었죠. 당시 꽤 고가의 엔진이었거든요.

2014년 언리얼 엔진 4를 공개하는 날, 에픽게임즈는 파격적인 로열티 정책을 발표합니다. 한 달 19달러로 소스 코드를 포함한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물론 매출에 따라 별도 로열티를 내야 했지만, 규모가 작은 게임사에게는 기회 비용이 없다시피 했습니다. 공개 당시 슬로건은 “여러분의 성공이 곧 저희의 성공입니다”였습니다.

일 년 뒤, 2015년 에픽게임즈는 “사랑한다면 자유롭게”라며 언리얼 엔진 4의 완전 무료화를 선언합니다.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무료 앱 개발에는 어떠한 로열티가 들지 않게 된 거죠. 여기까지는 단순히 ‘파이 키우기’ 전략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포트나이트 대성공 이후, 더 규모가 큰 지원 정책을 이어나갔습니다.

포트나이트의 성공은 엄청났다. 출시 4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 / Epic Games

2017년 출시한 포트나이트의 흥행은 엄청났습니다. 에픽게임즈는 포트나이트 출시 8개월 만에 누적 매출 1조 원을 기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게임사는 큰 성공 이후에는 게임 인기를 유지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발 빠르게 후속작 투자에 나섭니다. 여유가 생긴 에픽게임즈는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바로 게임 온라인 판매 플랫폼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만들었습니다. 거대한 규모의 개발자 지원 프로젝트도 발표했죠.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공정한 생태계’를 위해 수수료를 크게 낮췄다. / Epic Games

2018년 12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스팀과 비교되며 다양한 이유로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스토어입니다. 물론 여전히 기능이나 콘텐츠 면에서 스팀과 비교하긴 이릅니다. 이런 에픽게임즈 스토어는 처음부터 스팀과 ‘비교’하며 등장했습니다. 바로 수수료였습니다.

스팀을 비롯한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 판매 플랫폼은 수수료를 30% 정도 가져갑니다. 5만원 짜리 게임을 사면 플랫폼이 1만5000원을 가져가는 셈입니다. 여기에 게임 엔진과 같은 솔루션에 대한 로열티를 빼면, 개발자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크게 줄어듭니다.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CEO는 이런 구조가 공정하지 못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개발자에게 더 많은 가치가 돌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에픽게임즈의 수수료는 기존 수수료의 반도 되지 않는 12%입니다. 심지어 입점한 게임사에 대해 언리얼 엔진 로열티를 면제까지 해줍니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수수료가 끝이 아니다. / Epic Games

에픽게임즈가 플랫폼에 반기를 들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8년 말에도 그들은 구글을 비롯한 모바일 플랫폼 수수료 30%가 과도하다며 ‘포트나이트 모바일 버전’을 해당 플랫폼에 출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도전이 아직까진 타 플랫폼의 수수료 인하와 같은 게임 시장에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포트나이트 모바일 버전 역시 결국 올해 초에 구글플레이 스토어에 입점했고요. 

에픽게임즈의 행보가 독특한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개발자를 지원해서가 아닙니다. 개발자가 답답해하는 부분을 대신 말해주고, 행동에 나서는 점에 있습니다. CEO부터 개발자 출신인 에픽게임즈는 개발자 입장에서 무엇이 힘들고, 어떤 점이 가장 불합리했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임 퀄리티에 관해 인증해주고 금전적으로 지원해주는 ‘에픽 메가 그랜트’도 개발자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정책입니다. 게임 개발자가 어려워하는 부분은 개발 비용만큼이나 게임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입니다. 지속적인 관심은 추가 투자로 이어지기도 쉽고, 게임 홍보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에픽게임즈의 개발자 지원은 2020년에도, 앞으로도 계속된다. / Epic Games

에픽게임즈에 관심이 생겼다면, 올해 초 공개한 2020년 신규 로열티 정책(프로젝트당 매출 1백만 달러까지 로열티 면제)과 멀티플랫폼 퍼블리싱 모델도 더는 놀랄 일도 아닙니다. 특히, 새로운 퍼블리싱 모델은 개발사가 지적 재산권(IP)을 100% 소유하지만, 에픽게임즈가 QA, 마케팅 등 모든 퍼블리싱 비용을 최대 100% 지원합니다. 

에픽게임즈에 너무 칭찬만 한 것 아니냐고요? 단순히 이번 이야기는 에픽게임즈가 한 일을 정리했을 뿐입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과거 자신들이 평범한 개발자이던 시절의 ‘절차(개발하는 방법 등)’보다 ‘일화(개발에서 겪은 어려움 등)’를 기억하기 때문에, 개발자가 정말 필요한 지원을 이어가는 게 아닐까 합니다.

※ 마소 401호 관련
국내 유일의 소프트웨어 전문지, 마이크로소프트웨어(마소) 401호에는 에픽게임즈가 생각하는 게임 엔진과 미래 기술에 관한 이야기가 담깁니다. 마소 401호는 7월 21일 발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