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의 The War of IT] (12) 희생을 치뤄서라도 이겨야 했던 타라와 전투

[toggle title=”필자 소개” load=”show”] 김영욱 http://YoungWook.com | 자신의 다양한 대형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 및 강연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는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기술을 전도하는 에반젤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 기획·정리 | 유재석 기자 yoojs@imaso.co.kr[/toggle]

오라클이 갑자기 지난 2013년부터 클라우드 서비스를 하나 둘 출시했다. 계산 자원을 제공하는 컴퓨트 클라우드(Compute Cloud), 비정형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오브젝트 스토리지 클라우드(Object Storage Cloud),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를 지원하는 데이터베이스 클라우드(Database Cloud) 등이다. 클라우드 서비스 자체가 신기한 일은 아니다. 아마존과 MS가 이미 훨씬 더 고도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라클의 행보는 어떤 면에서는 식상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우리가 신선하게 받아 들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오라클 수익 모델은 라이선스를 팔아서 얻는 부분, 각 제품 유지보수 계약을 통해 얻는 수익으로 나눠져 있다. 클라우드로 넘어간다는 것은 두 수익 구조를 모두 악화시킬 수 있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오라클이 클라우드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하나다. 힘겨운 싸움이 되더라도 클라우드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는 상황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세계 2차 대전에서도 조그마한 산호초 섬 하나를 점령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을 감당했던 사례가 수없이 많다. 이번 글에서는 타라와 전투를 통해서 희생을 감내하고서라도 얻어야 할 승리를 함께 살펴본다.

작전명, 전격

제일 먼저 해안선에 도착한 LVT인 49번 My Deloris
제일 먼저 해안선에 도착한 LVT인 49번 My Deloris

1943년. 미국은 진주만의 치욕을 조금씩 씻으며 태평양의 주요 지점을 점령하고 있는 일본군을 착실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1943년 2월 솔로몬제도에 있었던 과달카날 섬을 탈환했고 5월에는 애투, 8월에는 키스카에 상륙해서 일루샨 열도를 탈환했다. 같은 해 11월 1일에는 부겐빌 섬에 해병 제 3사단을 기습 상륙시켜 솔로몬 제도는 사실상 미군이 장악한다. 이로서 파죽지세로 밀려 내려오던 일본군은 발목을 잡혔을 뿐만 아니라,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미군에게 밀리는 상황이 됐다.

당시 미군은 유럽에서 독일군과 싸우는 동시에 태평양에서 일본군과 싸워야 하는 이중 부담이 있었다. 미군의 우선 순위는 독일군에 대응하는 게 가장 높았다. 그리고 두 번째 우선 순위가 일본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우선 순위는 연합군에서 중국의 이탈을 막는 데 있었다.

미 육군을 지휘하고 있었던 맥아더는 오스트리아를 기지로 삼고 그 위쪽의 뉴기니와 작은 섬을 하나씩 점령하며 일본 쪽으로 밀어부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병력 운영을 위해서는 하와이에서 가까운 마셜 군도를 먼저 점령할 필요가 있었다. 마셜 군도를 일본군이 점령하고 있는 한 태평양을 오고 가는 미해군에게는 큰 걸림돌이 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마셜 군도의 전략적 중요성은 부각됐지만 정작 미군은 마셜 군도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미군은 마셜 군도 점령에 필요한 정보가 없었으나 알아낼 방법도 없었다. 대부분의 정보는 항공촬영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마셜 군도까지 거리가 멀어 정찰기가 한번에 날아 갈 수 없었다. 항공모함을 이용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정찰 용도로 항공모함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항공모함이 섬이나 육지 근처에서 오래 작전하다 보면 잠수함의 공격에 노출 될 위험도 함께 있었다.

그래서 마셜 군도 아래에 있는 길버트 제도를 먼저 점령해 주변 섬에 비행장을 확보하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미 해군을 이끌고 있었던 니미츠 제독은 길버트 제도뿐만 아니라 그 일 때의 여러 섬들을 한꺼번에 폭격해서 일본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러면서 작전명 ‘전격’(Operation Galvanic)이 시작됐다.


예상외의 철웅성이었던 베티오 섬
일본군은 길버트 제도를 지키기 위해 철저히 준비했다. 주요 방어는 길버트 제도안에 있는 타라와 환초대에 위치한 베티오 섬에 집중했다. 베티오 섬 방어를 위한 시설물도 견고하게 구축했다. 이 중 상륙부대 저지를 위한 피라미드 모양의 수중 구조물도 있었다. 이 수중 구조물은 2~6미터 간격으로 V자 모양으로 설치해 섬으로 가까이 오면 올수록 좁아지게 배치했다. 또 좁아지는 위치에 기관총부터 127mm 포까지 화력을 집중해 미군에게 최대한 화력을 집중했다.

일본군이 베티오 섬에 만들었던 방어물
일본군이 베티오 섬에 만들었던 방어물

주변 산호초에도 바리케이드, 지뢰를 설치했다. 코코넛 통나무로 저지선을 만들었는데 여기에도 어김없이 기관총과 벙커가 설치했다. 주요 시설에는 보병의 접근을 막기 위해 철조망을 전방에 설치했다. 2겹이상의 통나무를 이용해서 만들어진 구조물과 철근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워낙 튼튼해서 최소 8인치 이상의 대포에서 철갑탄으로 명중했을 때만 파괴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일본군은 8인치 해안포 4문, 127mm 해안포 8문, 88mm 해안포 6문, 88식 75미리 대공포 10문 그리고 70mm 대공포 8문, 92식 70mm 야포 6문, 94식 37미리 대전차포 9문, 13mm 중기관총 35정과 경기관총 다수를 배치했다.

미군은 일본군이 단단히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모르고 있었다. 베티오 섬은 길이가 고작 3킬로미터에 폭은 1킬로미터 밖에 안되는 정말 작은 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작은 섬에 이렇게 엄청나게 무기를 쌓아 놓고 있을 거라고는 누구라도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여기에 전투 병력 2619명과 강제 징집된 한국인 노동자들까지 포함해서 4836명이 주둔하고 있었다.

베티오 섬의 방어진지 구축 현황을 나타낸 지도
베티오 섬의 방어진지 구축 현황을 나타낸 지도

방어태세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만 미군도 나름 열심히 상륙작전을 준비했다. 첫 번째는 LVT(Landing Vehicle Tracked)였다. LVT는 원래 늪지대에서 수송용으로 개발된 민간용 장비를 군용화한 것으로 상륙정을 사용할 때보다 장점이 많았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첫 장면에 나왔던 노르망디 상륙 장전에서 상륙정 문이 열리자 마자 독일군의 기관총 공격이 집중돼 상륙정에서 내려 보지도 못하고 죽어갔다. 반면, LVT는 물에서 나와서 행동이 용이한 육상까지 진격해서 병력을 하차할 수 있어서 효과적이었다. 미군은 좀 더 많은 LVT를 요청하는 한편 방어력을 향상 시키기 위한 개조도 함께 진행했다. 기본적인 LVT는 수송 용도로 개발된 것이어서 방어력이 형편없었다. 심지어는 소총탄에 대한 방어력 조차 없었다. 그래서 LVT들을 뉴질랜드에 있는 철공소에 보내서 9밀리의 장갑을 덧붙였다. 또 기관총들도 설치해서 공격력도 보강했다.

강화된 LVT를 사용하는 것은 효과적이지만 육지에 도달하기 전에 산호초에 걸릴 위험이 있었다. 산호초가 생각보다 많이 성장해 있다면 LVT를 사용한 보람도 없이 결국은 바다에 내려서 기관총탄이 빗발치는 해안을 달려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LVT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고 또 어차피 정보도 거의 없었던 상황이었다.

LVT는 상륙작전에 꼭 필요한 장비였다
LVT는 상륙작전에 꼭 필요한 장비였다

일본군은 미군이 베티오 섬 남쪽으로 상륙할 것으로 생각하고 남쪽에 방어력을 집중했지만 미군은 북쪽 해안으로 상륙위치를 잡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해안 저지선을 뚫고 지나갈 전차 14대도 배치 받았다.

곧이어 1만8000명 제2해병사단이 탑승한 수송함 2척이 호위함대의 보호를 받으면서 출발했고 사전작업으로 B-24 폭격기가 베티오 섬을 폭격했다. 이 폭격으로 베티오 섬에 일본군이 만들어 놓은 비행장에 있던 항공기 9대가 파괴됐다. 방어에 나선 일본군 전투기 18대중에 10대를 파괴했다. 항공전력에서 일방적으로 밀리자 일본군은 베티오 섬에서 모든 항공기를 철수시켰다. 1943년 11월 19일 50대의 LVT가 합류하면서 상륙작전을 위한 준비가 거의 다 됐다.

상륙작전의 시작
1943년 11월 20일 오전 3시. 해병대를 가득 실은 수송선단이 정렬을 마쳤고 제2연대 병사들에게 쇠고기 스테이크와 삶은 계란을 아침으로 제공했다. 병사들은 M1소총과 128발의 탄약 그리고 수류탄 4발과 수통 2개 그리고 통조림 등을 받았다.

장비를 챙긴 병사들이 상륙을 위해서 LVT로 옮겨 타는 과정에서 수송선단의 위치가 아군의 포격을 가림과 동시에 일본군의 포격에도 노출될 수 있는 위치라는 것이 알려졌다. 수송선단을 재배치 하면서 또 한번 혼란이 일어났다.

일본군은 몰려온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을 보면서 선제공격 대신 대응 사격을 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다. 선제공격을 하자는 의견도 내부적으로 있었지만 선제공격으로 위치가 노출되는 것이 오히려 더 피해가 클 것으로 판단해 대응 사격을 했다.

오전 5시 5분이 되자 미군의 기함인 메릴랜드에서 탄착 관측을 위해서 정찰기 한 대가 날아올랐다. 그리고 이를 포격으로 오인한 일본군이 포격을 시작하면서 전투가 시작됐다.

오전 8시가 넘어서면서 상륙부대들이 출발하기 시작했으나 기대를 모았던 LVT들은 생각보다 시원찮았다. 그도 그럴 것이 장갑을 강화한 상태에서 병력과 물자를 가득 실은 상태에서 바다의 조류까지 극복하기에는 설치돼 있는 146마력의 엔진으로 무리였다. 천천히 나아가는 LVT의 성능상의 한계 때문에 상륙 예정 시간은 점점 더 늦어지고 있었다.

일본군은 접근하고 있는 미군의 상륙정들이 모두 산호초에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힘에 겨워하면서도 LVT들은 산호초를 타고 넘어서 계속 공격해 들어왔다. 일본군은 순간 당황했다. 모든 사격을 산호초에 집중하기 위해서 준비해 놓고 있었는데 소용없어진 것이다.

제일 먼저 해안선에 도착한 LVT 49번 My Deloris
제일 먼저 해안선에 도착한 LVT 49번 My Deloris

LVT들은 속속 해안선에 도착해 병력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해안가에 있는 산호초는 넘어갔지만 해안선에 일본군이 설치해 놓은 바리케이드를 넘지는 못했다. 심지어 해안선의 바리케이드를 넘다가 피해가 속출했다. 그래서 해안선까지 병력을 소송하고 후방 산호초에 있는 상륙정과 해안선을 왕복하면서 병력을 수송했다. 장시간 왕복하면서 15대 이상 LVT가 파괴됐다. 이 와 중에 항공지원은 미미했고 함포 지원 사격도 엉망이었다. 많은 사상자가 상륙과정에서 발생했고 무전기란 무전기는 대부분 침수 당하거나 망가져서 전령이 직접 뛰어다니며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것이 엉망이었지만 그와중에 미군은 M4 셔먼 전차 10대를 상륙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때가 태평양 전선에 처음으로 M4 셔먼이 투입된 작전이었다. 문제는 제대로 전차를 운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차는 포격으로 생긴 구덩이에 빠지거나 일본군 포격으로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진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런 혼란의 한복판에서도 미군은 최악의 상황을 통해서 배우고 있었다. 겨우 살아남은 몇 대의 M4 셔먼 전차를 보병과 함께 운영하면서 적진을 파괴하고 잔당을 소탕하며 전진하는 방법을 익혔다.

첫날 상륙작전에 투입된 5000명 병력중에서 1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전선에 잔존한 병력들은 빠르게 재편성되고 있었다. 야전에서 직접 지휘하고 있었던 라이언 소령은 흩어진 병력들을 모아서 부대를 재편했는데 미군들 사이에서 이 부대를 ‘라이언의 고아들’이라고 불렀다. 라이언의 고아들은 어느새 제법 큰 병력에 M4 셔먼 전차 2대까지 보유한 부대로 재편되었고 독자적인 공격으로 그린비치로 명명된 해안을 완전히 소탕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확보한 그린비치는 미군의 안전한 상륙지점으로 변했다.

상륙 3일째가 되자 미군들은 승리를 확신하기 시작했다. 물자가 충분했고 통신체계도 살아나면서 함포 지원사격도 정확해졌다. 일부 상륙했던 미군이 서로 연결됐고 그 과정에서 일본군은 고립됐다. 궁지에 몰리자 일본군은 만세 돌격을 시작했다. 50명씩 2개조가 ‘반자이’를 외치며 돌격해 들어왔지만 기관총과 소총 부대에 의해서 모두 사살됐다. 새벽 4시가 되자 300명 규모의 만세 돌격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불타는 조명탄 아래서 일본군과 뒤엉킨 해병대는 지원 요청 없이 200여명의 일본군을 사살하고 공격을 막아냈다. 해병대도 45명의 전사자를 냈다. 이를 마지막으로 일본군은 빠르게 와해됐다.

상륙 4일째가 되자 공병대가 다시 재정비한 활주로에 미군의 비행기들이 도착하면서 전투는 미군의 승리로 기록됐다. 그러나 승리의 대가는 엄청났다. 길버트 제도를 점령하기 위해서 투입되었던 미군은 3407명 사상자를 기록했다. 베티오 섬의 일본군 수비대는 사실상 전멸했다. 전체 병력의 97%에 해당하는 4690명이 전사 또는 행방불명 되었으며 146명이 포로가 되었는데 이 중에서도 129명은 한국인 강제 노역자다.

타라와 전투에서의 큰 손실은 미군뿐만 아니라 미국 본토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길버트 제도는 당시 미군에게는 꼭 필요한 곳이었고 어떠한 희생이 뒤따르더라도 얻어야 하는 곳이었다. 타라와 전투에서의 손실의 뼈아픈 결과를 통해 미군은 많은 것을 배웠다. 유용함이 입증 된 LVT를 좀 더 강력한 모델로 새롭게 개발하는 계기였으며 상륙작전을 위한 교본은 완전히 새롭게 다시 쓸 수 있었다. 함포사격도 무작위로 퍼붓는 방식에서 벗어나 포격과 관측을 반복하면서 정밀하게 공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어떠한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넘어야 하는 핵심 기술
네스트(Nest)는 미국내에 가정용 온도 조절기를 만드는 회사다. 토니 파델이 창업한 회사로 직원 300명 전원이 애플 출신이라고 할 정도로 애플의 기업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 때는 ‘작은 애플’로 통하기도 했다.

미국 주거 환경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난방, 냉방 그리고 환풍 시스템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 있다는 점인데 우리나라의 가정용 보일러와 에어컨이 별도로 운용되고 있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네스트는 이렇게 하나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가정용 온도 조절기를 만들고 여기에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 기술을 적용한 서비스를 붙였다. 그 결과 네스트의 온도 조절기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용자들이 선호하는 형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알아서 온도를 맞추어 주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구글이 인수한 네스트
구글이 인수한 네스트

구글이 갑자기 네스트를 현금으로 3조4000억 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분명히 혁신적인 제품인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도 3조4000억 원이라는 금액은 일반인들로서는 쉽게 납득하기 힘든 거액이었다.

회사의 매출에 10배에 이르는 가격을 치뤄서라도 반드시 인수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소소하게는 이 회사가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머신 러닝 서비스에 130개에 이르는 특허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네스트가 사물인터넷 기술과 스마트 홈 서비스의 최전선에 나와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서 구글은 새로운 시장으로 빠르게 한 발 나아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가정에 대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돌파구를 마련했다.

구글이 이렇게까지 급진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이유를 다른 면으로 보면 수익 구조에도 있다. 언론에 알려진 것처럼 구글은 많은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여전히 검색을 기반으로 한 광고 수입이 절대적이다. PC를 기반 시기에는 스폰서 링크를 노출하는 광고수익 모델이 유효했지만 모바일 시대의 작은 스크린에서는 스폰서 링크를 몇 개씩 노출할 수 없는 문제가 생겼다.

미국에서 검색엔진 점유율 28.07%를 차지한 MS 검색엔진 빙.
미국에서 검색엔진 점유율 28.07%를 차지한 MS 검색엔진 빙.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사용자들의 사사로운 일상속에 자연스럽게 광고를 끼워 넣으면서 거부감 없이 매출을 끌어 올리며 모바일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SNS는 구글이 너무나 간절히 바랬지만 아직도 가지지 못한 영역이다. 구글 플러스를 열심히 밀었지만 여전히 사용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업친 데 덥친 격으로 MS 검색엔진의 투자가 매우 공격적이다. 소프트웨어 업체가 아닌 서비스 업체라고 선언한 MS 입장에서는 검색엔진은 반드시 얻어야하는 MS의 길버트 제도다. 그래서인지 MS는 지속적인 투자와 개선을 통해서 조금씩 구글을 향해서 접근하고 있다. 최근에는 MS의 검색엔진인 빙(Bing)을 기본으로 탑재하는 PC에 대해 윈도우를 파격적인 가격으로 책정했다. 그 결과 2014년 10월에는 북미 시장에서 MS의 빙이 약 30%의 시장 점유율로 시장 2위를 차지했다.

정리
전쟁에서 희생이 없는 승리는 없다. 문제는 그 희생이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IT 기업의 조단위가 넘는 인수합병의 소식들을 접하면서 전략적인 투자와 희생을 결정할 수 있는 그들의 여유와 냉철한 판단력이 왜 I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늘 아쉽다. 북한으로 대륙에 연결이 단절된 우리나라가 대륙을 호령했던 기상을 잊어버리고 조그만 섬나라 사람으로 살게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기만 하다. 희생과 투자 그리고 실패를 용인 할 수 있는 그런 문화가 오늘도 아쉽다.

전쟁에서 성공은 전쟁의 황금률을 얼마나 잘
실천했느냐에 달려 있다.
황금률이란 속도, 단순함, 과감함이다.
-조지 패튼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