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고전을 만나다] 알렉산드로스, 대제국을 세우다

고대 최고 명장 카르타고의 한니발과 그로부터 로마를 구한 영웅 스키피오가 어느 날 만나 대화를 나눈다. 스키피오가 “이 시대의 최고의 장군이 누구냐?”라고 묻자 “말할 것도 없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능가할 사람은 없소”라고 한니발이 응수했다. “그렇군요. 그러면 두 번째는요?” “에피루스의 피로스지” “음… 그럼 세 번째는?” “바로 나, 한니발이오” 그러자 언제쯤 자기 이름이 나오나 하고 조바심 내던 스키피오는 “하하, 그러나 장군은 제게 지지 않았습니까?”라고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하지만 내가 그때 당신한테 지지 않았다면, 나는 알렉산드로스와 피로스를 뛰어넘어 사상 최고의 명장이 되었을 거요”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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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석 leebs11@empas.com | 기술기획 및 아키텍처 전문가다. 삼성SDS의 수석 엔지니어로 소프트웨어 및 애플리케이션 아키텍처 평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역사와 인문 고전의 매력에 빠져들며 IT人으로서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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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최고 영웅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꼽는 데엔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20살에 그리스 북부의 소국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어 그리스 전역을 통일하고 3년 만에 당시 세계의 최강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시키고 지중해 연안과 이집트, 멀리 인도 지역까지 광활한 영토를 통일한 대왕이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다. 일찍이 그처럼 단기간에 세계를 통일한 사람은 없었다.

세계 정복의 원대한 꿈을 꾸다
알렉산드로스(기원전 356 ~ 323)의 이런 눈부신 전과는 마케도니아 왕이었던 그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닦아놓은 기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케도니아가 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며, 아들보다 앞서 그리스를 제패하고 동방 원정 계획을 세웠던 인물이었다. 필리포스는 그리스인들로부터 변방의 이민족 취급받던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최강의 국가로 만들었다. 마침내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도시국가를 대표하는 맹주로 만들었고 그는 그리스 연합군의 총 사령관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필리포스는 기원전 336년 의문의 암살을 당하고 만다. 암살의 배후가 페르시아라는 설도 있고 아내 올림피아스라는 설도 있었다. 사실 필리포스는 새로 얻은 왕비 클레오파트라와 그녀가 낳은 아들을 총애했다. 그로인해 올림피아스와는 이혼했으며 아들 알렉산드로스를 멀리 내쫒은 적도 있었다. 알렉산드로스에겐 아버지의 죽음은 행운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알렉산드로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어디를 정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꿈을 이룰 기회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아쉬워하며 “아버지가 승승장구하여 모든 것을 다해버리면 내게는 중요한 일을 할 기회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곤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후계자 교육을 받았다. 특히 아버지 필리포스는 마케도니아의 궁정의사의 아들을 스승으로 모셔와 3년간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치게 했다. 그 스승이 바로 그리스 최고 철학자로 추앙받던 아리스토텔레스였다. 당시 13살이었던 알렉산드로스는 최고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철학, 고전, 수사학, 의술, 통치술 등 왕에게 필요한 덕목들을 교육 받았으며 왕으로서 갖추어야할 성품과 지도력도 전수받았다. 또 알렉산드로스는 고전을 즐겨 읽었다. 특히 그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완전히 매료되어 잠자리에 들 때에도 칼과 함께 항상 베게 밑에 두었다고 한다.
필리포스가 암살을 당하자 알렉산드로스가 20살의 나이에 마케도니아 왕에 올랐다. 왕에 오르자마자 왕으로서의 자질을 시험받는데 테바이를 선두로 해서 그리스 도시들이 마케도니아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테바이를 본보기로 삼아 철저히 응징함으로써 아테네를 비롯한 다른 그리스 도시들의 이탈을 막고 그리스 동맹군의 결속을 굳건히 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전 그리스의 대표자 회의를 코린토스에서 열고 자신이 그리스군의 총사령관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이에 많은 정치가,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알렉산드로스를 찾아와 알현했으나 코린토스에 머물고 있던 키니코스 학파(금욕주의적인 냉소주의 학파)의 디오게네스가 찾아오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괴짜 철학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던 디오게네스가 괘씸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몸소 그를 찾아갔다. 마침 디오게네스는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다”라는 알렉산드로스의 말에 디오게네스는 특유의 냉소주의적인 말투로 이렇게 답했다.

“그저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옆으로 조금만 비켜 서 주면 좋겠소.”

디오게네스를 벌주자는 그의 부하들의 말에 알렉산드로스는 부하들에게 말했다.

“내가 만일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기원전 334년 22살의 알렉산드로스는 드디어 페르시아 정복을 위하여 소아시아로 진군할 준비를 모두 갖추었다. 그는 원정을 떠나기 전에 왕실 및 개인 재산을 군사들에게 모두 분배하여 나누어주자 그의 부하 장수가 걱정하며 물었다.

“왕의 것으로는 무엇을 남겨놓으셨습니까?”

알렉산드로스가 대답했다.

“나를 위해서는 희망을 남겨놓았소.”

그러자 “그럼 왕을 모시고 떠나는 저희도 그 희망을 나누어 갖겠습니다”라며 부하들도 따랐다.

그는 정복전쟁 내내 재산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페르시아를 정복하면 훨씬 큰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소아시아 지역을 점령해 나갈 때마다 금은보화와 각종 전리품을 부하들에게 아낌없이 배분해 주어 부하들의 충성심과 사기를 높임으로써 리더십을 확고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 번의 전투로 100만 대군의 페르시아를 멸망시키다
드디어 5만 여명의 그리스 연합군은 20배나 많은 페르시아 군과 전쟁을 위해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에 상륙했다. 그라니코스 강에서 마케도니아 군과 페르시아 군의 첫 번째 전투가 벌어졌다.

알렉산드로스는 기병을 이끌고 직접 선두에 서서 강을 건너 몇 배나 많은 페르시아 군을 향해 돌진함으로써 그리스군의 선봉을 이끌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어깨와 허리에 상처를 입고 투구가 반 토막 나는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면서도 맹렬한 기세로 싸웠다. 결국 페르시아군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퇴각하여 첫 번째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그라니코스 전투의 승리 이후 자신감에 넘친 그리스 군은 페르시아 식민지인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의 해안 도시들을 공략하기 위해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던 중 고르디온에 이르렀다. 알렉산드로스가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고르디온의 제우스 신전에 도착했는데, 이 신전 기둥에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유명한 마차가 묶여져 있었다. 옛날 이 지역에 이륜마차를 타고 온 사람이 혼란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이 있었는데 고르디우스(황금 손 미다스의 아버지다)가 이륜마차를 타고 나타나 결국 왕이 되어 나라를 ‘고르디온’이라 했다.

그가 왕이 된 기념으로 자신이 타고 온 마차를 신전 기둥에 묶어놓았다고 한다. 마차는 매우 복잡하게 얽힌 매듭으로 묶여져 있었다. 아무도 그 매듭을 풀 수 없게 되자 ‘그 매듭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된다’는 전설이 생겼다. 그 매듭을 지금까지 아무도 풀지 못했다는 애기를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단칼에 매듭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는 “내가 아시아의 지배자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기원전 333년 알렉산드로스는 잇수스 평원에서 페르시아 황제 다리우스 3세가 직접 이끄는 페르시아의 수십만 대군을 만났다. 그리스군은 5만 정도로 절대적인 병력 열세였다. 그럼에도 알렉산드로스는 총공격을 명령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애마 부케팔로스를 타고 갑옷과 깃털 장식을 단 투구를 번쩍거리며 근위부대를 이끌고 적을 향해 돌진했다.

알렉산드로스의 공격 전략은 중장보병을 밀집대형으로 세워 송곳처럼 중앙을 직접 공략하는 것이었다. 그리스의 군사 수도 적었고 급경사 지역인 잇수스 평원은 기병이 효과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기병을 주력으로 하는 페르시아 군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중장보병은 다리우스 3세가 지휘하고 있던 중앙을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것처럼 뚫고 들어가는데 성공한다.

다리우스는 점점 다가오는 알렉산드로스를 보자 당황한 나머지 전차를 타고 도주하자 페르시아 군대도 일시에 무너지며 앞 다투어 도망갔다. 5만의 군대로 60만 명이나 되는 페르시아 본군에 대승을 거둔 것이었다. 이번 승리도 알렉산드로스의 대범하고 과감한 전략의 승리였다. 다리우스 3세가 겁쟁이였던 것도 한 몫을 했다.

잇수스 전투의 승리로 엄청난 전리품과 함께 다리우스 3세의 어머니, 왕비 그리고 두 딸을 포로로 잡는 성과를 올렸다.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의 가족들을 방문하여 그들을 안심시키고 신분에 맞게 예우함으로써 왕가의 여인들을 감동시켰다.

잇수스 전투의 알렉산드로스(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출처 : 위키피디아)
잇수스 전투의 알렉산드로스(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출처 : 위키피디아)

알렉산드로스는 다리우스 3세를 즉시 추적하지 않고 방향을 바꿔 이집트로 향했다. 이미 알렉산드로스의 승전 소식을 알고 있던 이집트는 저항하지 않고 항복했다. 이로써 이집트까지 그의 발밑에 두었다. 이집트 정복 직후에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세웠다. 이 도시는 후에 로마시대 최대의 문화, 교육, 상업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오늘날 이집트 제2의 도시가 되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이름을 높이고 있다.

이집트에 머물던 시기에 알렉산드로스는 제우스 암몬 신전에서 신탁을 받았는데 신탁은 그가 ‘제우스 암몬신의 아들’임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암몬신의 아들임을 확신하고 자신이 마치 신이 된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기원전 331년 이집트까지 평정한 알렉산드로스는 다시 페르시아로 향했다. 이즈음 다리우스의 왕비가 오랜 행군에 지쳐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알렉산드로스는 깊은 애도를 나타내고 페르시아의 풍습에 따라 예를 갖춰 성대하게 장사를 지내주었다. 왕비의 여종이 이 소식을 다리우스 왕에게 전했다. 다리우스는 아내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면서 자신의 아내를 극진히 대우해 준 알렉산드로스에게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나의 왕가와 왕국의 신들이시여! 부디 나의 제국을 무사히 이끌어 주시고 승리를 주시옵소서. 그러나 만일 나의 운명이 다했다면 다른 사람이 아닌 알렉산드로스를 페르시아의 왕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해 10월 알렉산드로스는 티그리스 강 동쪽 가우가멜라에서 다리우스 3세와 다시 만났다. 그리스 군은 5만 정도였고 페르시아 군은 20만 규모였다. 다리우스는 잇수스에서의 패전을 거울삼아 기병전에 유리한 가우가멜라 평원에 군사들을 배치시켜 놓았다. 공격하기로 한 아침에 늦잠을 자는 알렉산드로스를 깨우자 “다리우스는 이미 내 손안에 들어 왔는데 일찍 일어날 이유가 없지 않소?”라고 대답했다 하니 참으로 대범하고 자신감에 차있는 알렉산드로스였다.

드디어 전투가 시작됐다. 알렉산드로스는 좌우 기병을 이용해서 페르시아의 기병을 양쪽으로 분산시켜 틈을 만든 후에 최정예 기병부대를 직접 이끌고 다리우스가 이끄는 중앙 본진으로 쳐들어갔다. 이번에도 알렉산드로스는 최선봉에 서서 전투를 지휘했다. 전투는 초반 팽팽하게 전개되나 결국 중앙이 뚫리고 알렉산드로스가 던진 투창에 다리우스의 전차병이 쓰러지자 또다시 겁에 질린 다리우스는 이번에도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왕이 도망친 페르시아 군은 우왕좌왕하다가 괴멸당하고 말았다. 얼마 뒤 다리우스 3세는 그의 부하 벳소스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공을 빼앗아버린 벳소스를 뒤쫓아 죽이고 다리우스를 페르시아 제국의 격식에 맞춰 정중하게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이때 알렉산드로스의 나이 불과 25살이었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영토 (출처 : 위키피디아)
알렉산드로스 제국의 영토 (출처 : 위키피디아)

제국의 몰락… 그리고 새로운 시작
이로써 광활한 페르시아 제국은 3년간 단 세 번의 전투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알렉산드로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도까지 정복하고자 계속해서 원정을 떠난다. 그러나 그리스 군사들은 계속되는 전쟁에 지쳐있었고 인도지역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이후로 7년간 인더스 강 유역의 여러 지역을 정복했으나 군사들의 원성이 끊이지 않자 알렉산드로스는 결국 전쟁을 그만두고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기원전 323년, 바빌론으로 돌아온 알렉산드로스는 열병에 걸렸다. 12일 후 위대한 정복자였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33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신하들이 후계자를 묻자 알렉산드로스는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중에 ‘가장 강한 자’라고 대답했다고 하는데, 그 말로 인해 부하들 간에 권력투쟁이 벌어졌으며 그가 정복한 넓은 제국은 네 개의 나라로 분할되었다. 결국 로마에 의해 차례차례 정복당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너무나 허무한 죽음이자 제국의 몰락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전쟁터에 나서면 왕으로 군림하며 뒤에서 명령하기보다 용감한 전사로서 전열의 맨 앞에 나섰다. 뿐만 아니라 그는 고대 군사 전략의 창시자다. 특히 그의 기병을 활용하는 능력은 천재적이고 창의적이다. 당시의 전쟁은 기병보다는 중장보병이 주력군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병을 활용해서 기동력을 높여 중앙 본진을 깊숙이 파고드는 전략은 전투 때마다 페르시아 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약 100년 후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알렉산드로스의 이 기병 전략을 익혀서 자신의 전략으로 만들어 로마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진정 위대한 이유는 ‘헬레니즘’이라는 문화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정복한 곳곳에 그리스식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를 70여 개나 세웠다. 이 도시들을 중심으로 폐쇄적인 그리스 문화와 동방의 문화를 융합시킴으로써 제국을 완성하고 개방적이고 보편적인 세계 문화를 정착시키고자 했다. 어느 정복 영웅도 문화를 탄생시키지는 못했다.

기원전 330년경부터 이집트가 로마에 정복당하는 기원전 30년에 이르는 약 300년간의 헬레니즘 시대는 로마 제국의 시민권 제도 등 세계주의 정책에 영향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서유럽과 이슬람 세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은 비록 단명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영원하다.

구글, 디지털 제국을 세우다
오늘날 우리는 물리적인 영토 전쟁 대신 디지털 영토에 대한 경쟁이 치열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 디저털 영토 관점에서는 구글국이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다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구글국은 1대 왕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조그마한 마을에서 공동으로 건국했다. 두 명의 젊은 왕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찾아 랭킹을 매길 수 있는 ‘페이지 랭크’라는 신무기를 개발했다. 강력한 검색엔진의 등장에 지식을 먹고 사는 백성들은 환호했다.

구글국은 건국 초기 한때 경제가 어려워지자 당시 검색 최강국이던 알타비스타국에 나라를 통째로 바치려했으나 알타비스타국은 변방의 조그만 나라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행히 원조를 받아 살아난 구글국이 백성들에게 지식 먹거리를 무료로 나눠주자 많은 백성들이 구글국으로 이사 오면서 구글국은 주변의 검색엔진 나라들을 하나 둘씩 점령해 나갔다.

1대 왕에 이어 에릭 슈미트가 구글국의 왕이 되었다. 이 무렵 구글국은 또 다른 무기들을 만들었다. ‘애드워즈’와 ‘애드센스’라 불리는 온라인 광고 무기였다. 이 무기들로 인해 구글국은 엄청난 재물을 모을 수 있게 되었으며, 이렇게 모은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구글국은 검색엔진 영토를 넘어 더 넓은 세계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구글국은 조그마한 신생국인 안드로이드국을 합병했는데 이것은 구글국에 엄청난 행운이자 구글국이 제국으로 커 나가기 위한 신의 한 수였다. 안드로이드국은 안드로이드 OS 라는 엄청난 잠재력의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안드로이드 국은 그 OS를 동방의 작은 반도에 위치한 삼성국에 먼저 팔려고 했었다. 그러나 삼성국은 이 OS 자원의 잠재력을 못 알아보고 거절하고 만다.

구글국은 검색엔진 영토를 통일한 것처럼 이번에도 동일한 전략을 폈다. 안드로이드 OS를 무상으로 전 세계에 뿌린 것이다. 그 중에서도 OS 자원이 전혀 없던 삼성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이 자원을 사용했다. 이 자원을 탑재한 신무기 갤럭시 시리즈는 디지털 세상의 판도를 바꿔버렸다. 가장 강력한 스마트폰 수출국이던 노키아국이 몰락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삼성국은 그 자리를 차지하며 애플국과 함께 스마트폰 영토를 양분했다. 동방의 변두리에서 디지털 세계의 강자로 올라 선 것이다.

OS 자원을 애플국과 양분한 구글국은 다시 넓은 세계로 눈을 돌렸다. 텍스트 넘어 다양한 동영상을 공유하며 즐기는 백성들이 많아지자 구글국은 유튜브국을 합병시켰다. 구글국 왕 에릭 슈미트는 “유투브국은 전 세계 정보를 연결해 어디서든 접속해 쓸 수 있도록 하려는 구글국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강력한 미디어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며 인수 의의를 밝혔다. 이로써 구글국의 야심은 명확히 드러났다. 세상의 모든 먹거리를 구글이 제공해서 모든 백성을 구글국의 백성으로 만들겠다는 것이 구글국의 야심이다. 구글국은 이를 위해 수많은 먹거리를 무상으로 백성들에게 나눠줬다. G메일, 구글맵, 구글어스, 피카사, 구글 독스, 구글 드라이드, 구글 북스 등 셀 수도 없을 만큼 많다.

이로써 구글국은 검색엔진 영토의 변방에서 시작해 검색엔진 영토를 통일하고, 온라인 광고 영토 대부분을 차치한 뒤 모바일 OS 대륙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디지털 영토를 차지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구글 제국이 되었다. 그것도 디지털 세계 역사상 최단 기간에.

구글이 제공하는 서비스들 (출처 : 구글 홈페이지)
구글이 제공하는 서비스들 (출처 : 구글 홈페이지)

빅 브라더 vs 사악해지지 말자
구글 제국은 이제 또 거대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광활한 영토를 가진 사물인터넷 대륙에 대한 전쟁이다. 이 거대한 사물인터넷 대륙은 아직 미지의 땅이다. 이 전쟁에는 구글국과 애플국 뿐만 아니라 변방에서 중원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한 삼성국과 전통의 소프트웨어 자원 강국인 마이크로소프트국, 반도체 칩 강국인 퀄컴과 인텔 등 수 많은 국가들이 가세하고 있다.

또 로봇과 인공지능 대륙에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자원들이 발굴되면서 이 대륙에 대한 전쟁도 서막이 오르고 있다. 이 대륙은 그동안 미개발지로 남아있었는데 최근 머신러닝이라는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면서 본격적으로 대륙 공략에 나서는 국가들이 많아졌다. 특히 이 대륙은 사물인터넷 대륙과 서로 연결되어 있어 이 대륙을 차지할 경우 미래의 디지털 세계의 패자로 나설 수도 있어 구글국이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구글은 알렉산드로스 제국처럼 단기간에 거대한 디지털 제국으로 성장했다. 젊은 제국 구글은 이제 기로에 서 있다. 알렉산드로스 제국처럼 금방 지는 해가 될지 아니면 그가 남긴 헬레니즘 문화처럼 300년을 지속할지. 선택은 구글 스스로와 그 사용자인 우리들에게 있다. 구글이 빅 브라더로 세상에 군림하는 순간 사용자들은 구글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구글의 방대한 개인 정보에 대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게 될 것이다.

구글 자신을 위해서라도 ‘사악해지지 말자’를 버리지 말고 마음에 담아 두기를 간절히 바란다. 알렉산드로스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희망’을 남겨 두었듯이 말이다.

[toggle title=”참고자료” load=”show”]
1. ‘알렉산드로스’, 조현미 저
2.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플루타르코스 저, 천병희 역
3. ko.wikipedia.org/wiki/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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