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균의 톡-tock-talk] 다시 공동체를 생각한다

김도균 kimdokyun@outlook.com  |  ‘강철 벼룩’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글 쓰는 엔지니어로 살아오고 있다. 최근 출간한 ‘Essential C# 5.0’외에 20여 권 의 역서를 출간한 전문서 번역가다. 해적 라이프를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 이노 베이터로 창의성과 상상력의 불꽃이 튀는 ‘해적(?)’들이 모인 기술 전문가 해적집단 GoDev의 선장이다. 프리지아랩(www.dokyun.pe.kr)이라는 개인 기술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정리 | 조수현 기자 suhyeoni@imaso.co.kr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메시지가 있는가? 백범 김구 선생은 성경의 로마서 8장 31절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해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김구 선생은 아마도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믿고 독립을 막는 수많은 부정적 상황과 반대자를 물리칠 수 있다고 확신하며, 자신의 몸을 독립에 내던졌을 것이다.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거나 그들의 전기를 읽어보면 인생의 좌우명이나 감동받은 글귀가 자주 언급된다. 어 느 누구도 순탄하게 살아서 위대해진 사람은 없다. 인생의 후반부 에 위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에 수많은 고난이 있었고, 이를 극복해 낸 스토리가 있기에 그들의 이야기가 더 큰 감동을 준다.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존경받는 그 위치에 있게 된 것과 그들의 삶이 더 빛나는 이유는 절망의 시대를 건너왔기 때문이다.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무도와 철학을 위한 배움의 공간인 개풍관을 열어 새로운 학습 공동체 모델을 만들고 있는 우치다 타츠루는 그의 책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에서 자기 구제와 공생의 삶을 위한 증여경제론을 설파했다.

우치다 타츠루의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우치다 타츠루의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우치다 타츠루는 현재 일본의 젊은이들이 절망의 시대를 건너고 있다고 봤다. 그는 일본 사회를 다음과 같은 시각에서 바라봤다.

“우리 사회는 물리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모든 부분이 돈으로 해결되는 사회가 됐다. 그렇다보니 어느덧 과거의 상호부조 공동체는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이런 풍요로운 시기가 어느 순간 끝나자 더 이상 안전하지도 않고 풍요롭지도 않은 나라가 됐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절망적일 만큼 저임금인데다가 잠잘 시간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젊은이들의 고용환경은 해가갈수록 더 악화되고 경쟁과 순위 매기기로 젊은이들에게 고립과 단절을 강요하고 있다.”

이 말은 한국 사회의 현 상황과도 잘 맞아 떨어진다. 우치다 타츠루가 바라본 일본의 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우리와 너무나 닮아 있지 않은가? 그의 책에서 이 시대상을 반영한 멋진 글 귀 하나를 발견했는데, 바로 ‘정어리 떼’라는 표현이다. 본질적인 논의는 없고 여론의 흐름이나 단순한 유행만 있는 현상, 즉 정보는 난무하지만 각자가 비교 검토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성이 상실된 이 시대의 사람을 정어리 떼에 비유한 것이다.

우치다 타츠루는 한때의 유행이나 그때만 통용되는 흐름이 있고, 가치의 중심이 없어진 정어리 떼 같은 사회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사회적으로 두들겨 패는 분위기니까 자기는 별 생각이 없어도 모두 똑같이 몽둥이를 들면 틀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시스템 전체가 어떻게든 잘 굴러가는 덕분에 질서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돌발적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금방 흩어져 버린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정부와 기업, 스스로에게 절망을 느끼는 이유는 정어리 떼 가운데 있어 고립되지 않고 외롭지 않은 것 같지만, 실상은 정말 기댈 수 있는 곳이 없어 언제 이 무리가 흩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정부도 기업도 기대지 말라고 하는 지금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생활 공동체이자 생존 공동체다. ‘네가 살아야 내가 산다는 마음’이 충만한 사람들의 모임이 필요하고 그런 모임을 시작해야 할 시기가 지금이다.

공격이 아니라 방어가 필요한 때
‘불황 10년’을 쓴 우석훈 작가는 ‘88만원 세대’라는 책으로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필자는 11월에 8박9일로 떠난 미국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 여행 틈틈이 이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지금은 돈을 벌고 불리는 공격을 할 때가 아니라 번돈을 지키고 장기적으로 크게 문제가 생기지 않게 자신과 주변에 적절한 재무구조를 만드는 방어를 할 때라는 저자의 주장이었다.

지금의 20대와 30대를 보면 아직 변변히 벌어놓은 것도 없는데, 이제부터는 있는 것만이라도 뺏기지 않도록 준비하고 살아남으라고 한다. 이 메시지는 향후에 펼쳐질 어려운 시기에 대한 저자의 급박한 심정을 대변한다.

우석훈 작가의 ‘불황 10년’
우석훈 작가의 ‘불황 10년’


정부와 기업은 어려운 시기라는 공포를 무기삼아 모든 복지와 개인에 대한 방어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자살률은 이미 둘째가 라면 서러울 지경이다. 얼마 전 EBS 다큐 프라임에서 방영한 ‘삶과 죽음의 그래프’에서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상반된 정책을 편 그리스와 아이슬란드가 어떤 결과에 이르렀는지를 소개했다. 경제 위기를 겪으며 좋은 나라가 갖추어야 할 모든 예산을 삭감했던 그리스는 자살률이 급증했다. 삶이 모욕당해 자살을 선택했다는 그리스의 한 노인의 얘기에 가슴 아파하는 한편으로는 지금의 청춘들에게는 모욕당할 삶조차 사치일지 모른다.

불황의 긴 터널을 지나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다. 생존 자체가 중요한 시점이다. 전국(戰國) 시대의 대규모 식객을 거느린 4명의 세력가 중 하나인 맹상군은 기술을 하나라도 가진 식객 5000명을 귀하게 대접한 덕에 절체절명의 순간에 식객의 도움으로 큰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이렇듯 이 시기에는 개인의 생존보다 힘없고 가난하며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한 곳에 모이면, 생각지도 못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 상상을 뛰어넘는 훌륭한 성과를 낼 수 있다.

방어선을 구축하고 앞으로 쏟아질 포화를 막아내려면 모여야 한다. 혼자서 지키려하지 말고 모여서 서로의 주머니를 지켜야 한다. 최선의 방어만이 공격의 기회를 얻는 길이다. 새롭지만 약간의 궁핍을 감수하고 저마다 잘할 수 있는 한가지 기량을 갈고 닦아야 한다. 주위의 시선과 보이기 위한 이미지, 명예, 권력보다는 머니볼 이론처럼 살아남기 위한 구체적인 역량과 은행잔고(최악의 상황에 1년간 버틸 수 있는 생활비), 최소한의 소비에 대한 목표치를 채우고 추구해 나가야 한다.

강사가 아니라 선생님이 필요한 시대
우치다 타츠루의 저서 ‘스승은 있다’에서는 선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만나기 이전이라면 우연으로 생각될 만남이 만남 이후 ‘필연’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사람.”

우치다 타츠루의 ‘스승은 있다’
우치다 타츠루의 ‘스승은 있다’


이 나라의 교육이 망가진 이유는 선생님이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고 학생들은 대가를 지불하는 거래가 배움이 됐기 때문이다. 가르침이 서비스가 되고 고객만족이 배움터에 등장한 이후 교육은 갈 길을 잃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그릇에 맞춰 각각 다른 것을 배우는 배움의 창조성과 주체성이 훼손되니 점수로 정량화된 공산품을 잘 찍어내는 강사만 남았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자크마리에밀 라캉은 인간이란 알고 있는 자의 입장에 서 게 된 동안에는 늘 충분히 알고 있다고 단언했다. 여기서 ‘안다는 것’은 콘텐츠 차원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차원’의 문제라고 한다. 제자는 선생님이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고 전제 하기 때문에 때로는 선생님이 가르치지 않는 것을 스스로의 질문과 대답으로 배운다. 배우는 자의 입장에서 사람은 처음부터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없는가, 나는 무엇을 모르는가를 말할 수 없다. 배움의 여정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에 달렸다. 우리는 질문을 던지는 법이 아니라 정답만 말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계속해서 따라쟁이와 같은 삶을 산다.

이제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소규모로 다양성을 주는 신 제조업이 떠오르고 있고, 저마다의 배움의 그릇을 채워줄 수 있는 선생님을 찾는 새로운 도제 시대가 도래했다. 배움을 커뮤니케이션으로 바라보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새로운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현하는 시대에 지금 내가하고 있는 일은 과거가 되고 도태된 기술이 돼 직업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기술적 실업에 대비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 특히 컴퓨팅 기술의 진화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와 앞으로 인간이나 갈길과 전망을 다룬 에릭브린 욜프슨과앤 ‘기계와의 경쟁’에는 ‘기술적 실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1958년을 정보기술의 논의 시작점으로 보고 2배씩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무어의 법칙을 적용했을 때 32번째가 되는 해는 2006년이다. 이는 체스판의 절반에 해당하는 32번째 칸을 지난 시점이기도 하다. 선형적 단계와 같은 발전 속도가 이제는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 시대에 들어왔다. 아픙로의 미래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

기계와의 전쟁
기계와의 전쟁


컴퓨팅 기술은 우리의 일을 더 쉽고 빠르게 만들었다. 아직은 여러 곳에서 주로 인간을 보조하는 능력으로 직업 현장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컴퓨터가 넘보지 못할 것만 같았던 인지적 영역이나 커뮤니케이션 영역도 자동화되고 있다. 이 책의 역자가 후기에서 ‘댐을 높일 것이냐, 배를 준비할 것이냐’라는 화두를 던졌듯 우리는 곧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다.

20대 후반에 대학을 졸업해서 40대까지를 보내고 40대에 다시 공부해서 80대까지 일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배움의 방식과 속도는 여전히 2차 산업혁명 때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간만이 갖는 고유성을 최대한 활용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야 하고, 기술의 발전에 올라타야 하는 시기가 됐다. 지금까지 해온 모든 배움과 성장의 방식을 의심해야 한다.

배움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우치다 타츠루의 말처럼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이 일어 나는 공간에서 질문하고 스스로 답해야 한다. 체스판 후반부에 맞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공동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 서로가 잘하는 한 가지씩을 내놓고 조합해 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지식이 새로운 지식의 토대가 됐던 시대는 빠르게 저물고 있다. 이제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이 등장하는 시대다. 혼자서 시도하지 말고 함께 시도하고 빠르게 실패한 뒤 수정하고 발전해 나가려면 기술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 나라의 교육이 망가진 이유는 선생님이 지식과 기술을 제공하고 학생들은 대가를 지불하는 거래가 배움이 됐기 때문이다. 가르침이 서비스가 되고 고객만족이 배움터에 등장한 이후 교육은 갈 길을 잃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그릇에 맞춰 각각 다른 것을 배우는 배움의 창조성과 주체성이 훼손되니 점수로 정량화된 공산품을 잘 찍어내는 강사만 남았다. 컴퓨팅 기술은 우리의 일을 더 쉽고 빠르게 만들었다. 아직은여

코딩 공동체
최근 NHN 넥스트(NEXT)의 사태를 바라보며 처음 넥스트의 비전을 인터넷을 통해 접한 날, 온라인 공간을 달군 수많은 기대와 염려를 다시 떠올렸다. 명문대학을 합격하고도 넥스트에 들어가기 위해 이를 포기하려는 아들 때문에 고민이라는 어느 부모가 인터넷에 올린 글도 다시 생각났다. 네이버가 많은 욕을 먹고 있지만 그 중 제일 잘한 일은 10년을 내다본 인재를 길러내겠다는 결정이 었지만 이 비전은 결국 ROI를 따지는 기업의 비정한 생산성 논리에 매몰되고 말았다. 12월 11에 나온 넥스트 교수진의 성명서 말미에는 다음과 같은 희망을 비쳤다.

“실적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기업도 교육의 참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모법이 이곳에서 부활하길 기원합니다.”

교육에 실적을 따지는 현상은 결국 현재의 기업에 내려진 저주가 교육에서도 되풀이 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를 정량화의 저주라고 생각한다. 향상시키려는 대상이 올바로 설정되고, 그 과정에서 많이 고민하고 본질을 꿰뚫어 볼 때 올바른 정량화를 이뤄낼 수 있다. 그러나 정량화 자체가 목표가 되면 쓸데없는 것들을 정량화하느라 기회를 잃게 된다. 교육을 정량화하면 바로 그렇게 된다.

교육 과정에 있는 모두는 저마다의 그릇에 따라 새로운 창조성을 발현한다. 다른 그릇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몇가지의 기준과 잣대로 평가한다면, 결국 우리는 기계와의 전쟁에서 지게 될 것이다. 미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이라기보다 지금까지 인간이 부딪혀온 문제를 논의의 대상으로 올려놓고 소프트웨어가 범용 컴퓨팅 기술 위에서 춤추도록 한 공동체가 주도할 것이다. 돈이 핵심 가치가 되는 기업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한 적정한 소프트웨어개발 기술을 찾는 코딩 공동체가 우리의 미래는 아닐까?

참고자료
1. EBS 다큐 프라임 2부작, 삶과 죽음의 그래프
2. NHN 넥스트 교수진 성명서
3. ‘절망의 시대를 건너는 법’ 우치다 타츠루, 메멘토
4. ‘불황 10년’ 우석훈, 새로운 현재
5. ‘스승은 있다’ 우치다 타츠루, 민들레
6. ‘기계와의 경쟁’ 에릭 브린욜프슨/앤드루 매카피, 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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