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욱의 The War of IT

43회의 칼럼을 되돌아보며 뽑은 The War of IT의 Best of Best

‘The War of IT’를 쓰기 시작한 것은 2012년 3월부터였다. 3년하고 반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을 따져보니 새삼 놀랍기도 하다. 그간 기고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다뤘었다. 1차, 2차 세계대전부터 살수대첩, 남북전쟁, 페르시아와 십자군, 칼레해전과 한산도, 태평양전쟁 그리고 그 누구보다 더 강했던 몽골군과 감동적이었던 크림전쟁의 메리시콜 등 다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이야기를 다루었다.

김영욱 http://YoungWook.com|다양한 대형 프로젝트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 및 강연 활동을 하는 테크니컬리스트다. 현재 한국마이크로소프트에서 기술을 전하는 에반젤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정리 | 조수현 suhyeoni@imaso.co.kr

사실 The War of IT를 쓰게 된 것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닷넷 기술 기고를 쭉 쓰다가 한번은 너무 지겨워 모바일의 미래를 2차 세계대전 속 독일군 티커(영어식 발음으로는 타이거) 전차와 미국의 M4 셔먼, 러시아의 T-34에 빗대 썼었다. 1:1의 싸움이라면 무적인 티거 전차가 연합군의 물량공세에 무너진 사실을 들어 안드로이드가 높은 점유율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이라고 전망했었다. 단순히 안드로이드가 좋아 내린 전망은 아니었다. 안드로이드는 개방적이어을 뿐 아니라 당시 애플에 대항할 유일한 모바일OS였기 때문이다. 이 글을 본 마소 편집부의 담당 기자가 이 콘셉트를 살려 쭉 써보면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그 반응이 반갑고 기뻐, 닷넷 칼럼을 과감히 접고, The War of IT 칼럼을 쓰기 시작한 게 오늘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2015년 한 해를 마감하는 의미로 43회의 연재 중 Best of Best를 뽑기로 결정했다.
감동의 전쟁
전쟁 관련 글을 쓰다가 너무 큰 감동에 혼자 눈물을 흘렸던 적이 딱 2번 있었다. 2013년 8월호에 실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철수작전, 크리스마스 카고 작전’이 그 중 하나였다. 크리스마스 카고 작전이라고 명명됐던 이 작전은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대중에게도 익히 알려진 흥남 부두 철수 작전의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개마고원의 장진호 전투부터다. 조금씩 북으로 전진했던 미 해병대 1사단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밤마다 야간 행군을 감행, 미리 잠입해 있던 중공군 30만 명에게 완전히 포위당했다. 미 해병대는 상황을 파악하고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병력을 집중했다. 30만 명의 중공군과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살인적인 추위를 이겨내며 흥남 부두까지 철수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개마고원뿐 아니라 그 주변에 있던 미군까지 모두 합쳐 10만 8000명이 흥남 부두에 고립됐다. 이들을 철수시키기 위해 당시 동원 가능한 함정이란 함정은 모두 이 철수 작전에 투입됐다. 미군은 병력과 장비 철수를, 국군은 병력과 피난민 철수가 최우선 과제였다. 피난민들은 미군과 군국에게 부역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생사가 갈릴 것이기에 국군의 입장에서는 피난민을 두고 갈 수 없었다. 국군은 여러 차례나 미군에게 피난민도 탈출시켜야 한다고 간청했다. 미군의 답이 없자 국군은 걸어서 철수하겠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결국 국군의 간청에 미군은 남은 자리에 태워도 좋다고 허가한다. 이 때부터 감동적인 피난민 탈출 작전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난민을 위해 군수물자도 포기하게 된다. 항공기를 지원하기 위해 정박해 있던 메러디스 빅토리라는 화물선에도 피난민 탈출에 힘을 보탰다.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에는 300톤에 달하는 항공유가 탑재돼 있어 안전상의 이유로 거절할 수도 있었으나 그들은 기관실부터 피난민들을 차곡차곡 실어 무려 1만4000명을 구하는 데 성공한다. 이 배는 훗날 단일 선박으로는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한 배로 기록된다.
피난민을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고 끊임없이 간곡히 청했던 국군과 이를 수용한 미군의 결정은 수많은 피난민을 학살로부터 구했다. 탈출이 끝난 다음날,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중공군이 흥남을 점령했다. 크리스마스 카고 작전은 피난민들과 국군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전쟁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알리는 계기가 됐다.
IT 기업의 전쟁에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명분의 가운데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구글과 IBM, 그리고 MS 모두 사회공헌팀과 기부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이들 사회공헌팀 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도 치열하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은 격하면 격할수록 더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진다. IT 기업의 사회공헌은 일반적인 기부 형태도 있지만 대부분 기술로 사회를 바꾸는 데 투자하고 있다. 구글의 경우 스타트업 지원을, IBM은 기업 환경 개선을, MS는 저소득층과 탈북 청소년에 대한 IT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러한 사회공헌이 코딩 교육으로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가장 힘주어 쓰고 싶었던 이야기
2014년 가을 우리나라에 영화 ‘명량’이 강타했다. 이순신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연일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더니 지금(2015년 11월)까지 1761만 명의 누적 관람객을 기록하며, 역대 1위 흥행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명랑에서 이순신 장국이 왜군을 맞아 극적으로 승리한 것은 사실이나 영화 속 잘못된 고증과 실제 사실과 다른 전개가 영화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하지만 개봉전까지 한편의 역사 드라마인 것처럼 홍보하고, 역사 전문가까지 내세웠던 것에 비해서는 역사적 기록과 다른 점이 많아 아쉬웠다. 영화 300에서 그리스군과 페르시아군이 맞붙어 싸우는 장면에서 그리스군은 팬티 하나만 입고, 빨간 망토를 휘날리며 싸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면도 허구다. 당시 그리스군은 나름 제대로 된 갑옷을 착용했고, 망토는 실제 전투에서 걸리적거리기 때문에 떼어 놓고 전투에 임했다. 팬티만 입고 싸우는 모습은 아프리카 줄루족에게서나 볼 수 있다.
300을 보며 크게 거부감 없이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다르다. 그렇게 마케팅의 산물로, 혹은 한편의 예능으로 다루기에 한국인에게 너무도 각별한 존재다. 이런 생각을 글로 담은 것이 2014년 9월호에 기고한 ‘명량 애프터 서비스’다. 영화 명량 속 이야기로 되돌아가면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12척을 제외한 모든 함대를 소실하고 난 뒤 명량에서는 거북선을 한 척을 새로 건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사실 무근이다. 극중에서는 거북선을 만드는 노인을 등장시키는 데 실제로 거북선을 설계하고 만든 이는 나대용이었다. 나대용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우리나라의 최신 잠수함에 ‘나대용함’이라고 명명하며 업적을 기리고 있을 정도다. 또 12척의 배를 끌고와 이순신 장군에게 바쳤던 배설은 도망치다가 화살을 맞아 죽는 것으로 그려졌으나 사실 고향으로 낙향했다가 도원수 권율에게 잡혀 참형을 당했다. 이외에도 과장된 조총의 위력과 실제 물길과 다른 진도 앞바다, 사실과 다른 백병전 등은 모두 허구다. 실제로 명량 앞바다를 찾았을 때 그 날의 함성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개인적으로 매우 아쉬운 영화였다.
IT 세상에도 표준과 비표준, 두 가지 기술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사실상 표준도 함께 존재한다. 미디(MIDI) 업계에서는 일본 롤랜드사의 MPU-401이라는 인터페이스가 시장의 사실상의 표준 기기였다. 표준적인 스펙을 모두 준수하더라도 MPU-401과의 호환되지 않으면 각종 소프트웨어, 장비들과 원할하게 연결되지 않는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고가의 사운드 블러스터라는 사운드 카드는 표준 미디만 지원했던 데 비해 삼호전자의 옥소리는 MPU-401과도 호환됐다. 시장을 표준을 간과하지 않고 따른 결과, 옥소리는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는 사운드 블러스터를 밀어내고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표준이든 사실상의 표준이든, 업계와 사용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표준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역사적 사실도 마찬가지다. 영화로 온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사실에 살을 붙여야 한다. 그래야만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명화로 거듭날 수 있다.

뛰어난 천재 한 명에게 마친 글
2012년 6월호의 The War of IT에서는 독일의 엔지니어 ‘폰 브라운’의 이야기를 다뤘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만 하더라도 미사일 개념 자체가 없어 사람이 직접 비행기를 타고 폭탄을 투여하거나 대포를 쏘는 게 유일한 원거리 무기였다. 지금도 국군이 자랑하는 K9 자주포 조차 연장탄을 함께 써야만 40Km 정도를 날아갈 수 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에서 1톤에 가까운 중량의 탄두를 330Km 밖까지 스스로 날아가 도시를 폭격하는 무기가 있었다. 그것도 액체 산소와 에탄올을 연료로, 무려 5,760Km의 속도로 9Km 이상 상승해서 목적지로 향하는 무기가 말이다. 바로 이 혁신적인 무기는 V2 로켓이다. V2 로켓은 독일군이 벨기에에서 탄두를 발사하면 불과 6분 뒤에 영국 런던에 떨어졌다. 이 미사일을 만든 사람은 베르너 폰 브라운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로켓에 관심이 많았던 폰 브라운은 나치의 지원을 받아서 비밀 무기 ‘로켓’을 개발한다. 그는 이후 친위대 소령까지 진급하는 등 인정을 받기도 했지만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임박하자 신변의 위험을 느꼈다. 나치가 자기를 연합국에 넘길 바에 그냥 죽일 것을 알았던 것이다. 히틀러가 자살하자마자 폰 브라운은 탈출을 감행, 미군에게 투항한다.
폰 브라운은 초기에 냉대를 받았으나 결국 미국을 위해 로켓을 개발을 맡게 된다. 이후 미항공우주국 마셜 우주비행센터의 초대 소장까지 맡았다. 아폴로 계획에 사용된 새턴V 로켓도 그가 개발했다. 아폴로 계획의 일부였던 월면차 개발에까지 폰 브라운이 일부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독일에 남겨져 있었던 로켓 엔지니어와 연구원, 그리고 설비들은 소련이 접수하게 된다. 소련은 그들을 이용해 로켓 개발에 힘을 기울인다. V2 로켓을 기반으로 소련은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고, 우주개 라이카, 최초로 지구 괘도를 돌았던 우주인인 가가린 등의 수많은 성과를 얻었다. 소련은 다양한 군사용 발사체도 만들었는데, 이 발사체의 기술이 북한으로까지 전해져 대포동과 노동 1호 같은 이름의 미사일 개발에 일조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기술들은 중동에 전달돼 이라크가 사용한 스커드 미사일 제작의 기반 기술이 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독일의 미사일 시설을 분석하기 위해 급파한 사람 중 췐쉐썬 박사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훗날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 로켓 기술의 아버지가 된다. 이 모두는 바로 폰 브라운에서부터 시작됐다.
IT 업계에도 폰 브라운처럼 모든 것의 시작으로 귀결되는 것이 있다. 바로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가 대표적이다. 애플이 GUI를 탑재한 컴퓨터로 세상을 깜짝 놀래키고 얼마 지나지 않아 MS도 GUI 기반의 윈도우를 출시했다. 이 둘의 경쟁은 소송으로까지 치닫게 되는데. 사실 GUI를 가장 먼저 개발한 것은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였다. 개인용 컴퓨터, 즉 PC라는 개념도 팔로알토 연구소가 만들었다. 팔로알토 연구소는 1973년 최초의 PC인 알토(Alto)를 개발했었다. 상업화까지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GUI뿐 아니라 마우스까지 갖춘 PC의 기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팔로알토 연구소는 근거리 네트워크 기술인 이더넷도 최초로 개발했다. 1991년에 파크패드라는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는데, 지금의 태블릿 기기의 기원이 되는 제품이다. 때론 수많은 사람이 해결하지 못하는 한 명의 천재가 해결하곤 한다. 그럴 때 이 한 명의 천재를 응원해주고 그가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혁신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다. 물론 그런 천재가 무척 귀하고 또 그가 천재라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시대적인 이슈를 다루었던 칼럼들
그간 전쟁사만을 다뤘던 것은 아니다. 전쟁과 관련된 몇 가지 지식을 함께 다루기도 했다. 2012년 11월호의 ‘전투식량이 전투력’이라는 칼럼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아도 배식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받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먹는 것은 군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문제다. 로마군만 봐도 개인별로 1.5Kg의 곡물을 지급받았는데 5000명에게 지급하려면 7.5톤의 곡물이 매일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포도주와 식초, 소금, 닭고기, 생성, 치즈, 육류, 야채와 올리브 기름 등 많은 것을 지급해야 했다. 나폴레옹이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한 전투식량을 공모하자 병조림을 최초로 개발한 아페르는 제대로 된 전투식량의 시발점이 됐다. 이후 병조림은 통조림으로 개선돼 남북전쟁 때 폭발적으로 소비된. 미군은 A, B, C 레이션으로 전투식량을 나누고 있다. 평시에 조리가 가능한 식량은 A, 전시에 야전에서 조리할 수 있는 식량은 B다. C 레이션은 전시에 야전에서 조리하지 않고 섭취할 수 있는 식량이다.
지금의 IT 업체들도 군량미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료 혹은 저렴한 비용으로 식사를 제공하고, 음료와 간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2012년 8월에는 ‘약자들의 현명한 선택, 비대칭 전략’이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북한의 잦은 도발로 인해 국내 정세가 불안할 때 썼던 글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은 일반적인 무기로는 국군의 상대가 안 된다. 2세대 전 무기를 보유한 북한의 무기 체제는 자동화되고 기계화되고 있는 국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처럼 힘의 균형이 깨졌을 때 상대적 약자가 취하는 전략이 비대칭 전력이다. 바로 핵무기다. 비대칭 전력을 사용한다는 사실은 상대방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서 일반인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은 핵무기나 화학무기는 강력하지만 상대방에게 사용하는 순간 그 어떤 명분도 상실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핵무기와 화학무기는 방어적인 무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IT 업계에도 서로의 약점을 파고드는 비대칭 전력을 전략적으로 쓴 사례가 많다. 구글의 경우 모바일 광고를 놓치면 존립이 어려우며, 애플은 대부분의 매출이 아이폰에서 나오고 있다. MS는 윈도우의 강점이자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애플이 아이폰에서 고객의 가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구글의 광고를 막는 옵션을 제공한다면, 안드로이드가 지속적으로 발전해 아이폰과 거의 동일한 수준이 된다면, 구글의 크롬북이 윈도우를 대체한다면. 이런 가정들 모두 비대칭 전력이 전략적 활용 시나리오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마치며
43회에 걸친 글들을 돌아보며 어떨 때에는 소재가 고갈돼 허덕이기도, 마감시간에 쫓겨 허덕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갔던 파주 양평에서, 때론 다른 곳에서도 원고를 다듬었던 기억들은 지금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까지 쓴 기고를 모아 다시 한번 내용을 검증, 보강해 쓴 ‘War of IT’라는 책을 잊지 못할 것이다. 43회가 아니라 1000회라도 The War of IT를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것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기 있기 때문이다. 우연히 쓰게 된 칼럼이지만 이 기회를 빌어 43회까지 연재할 수 있게 응원해 준 독자와 마소 편집부에게 고마움과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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